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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말하지 않았지만

오용진 2012. 5. 9. 11:28

 

타고르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말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전문>

1861년 오늘 태어난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입니다.

많은 사람이 타고르가 우리나라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란 수식어를 처음 단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1886년 미국의 외교관 퍼시벌 로웰의 책 《조선-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타고르가 시를 쓸 때만 해도 일제의 질곡 속에서 언제 벗어날지 몰랐던 코리아, 마침내 깨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다가 거꾸로 원조를 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습니다. 등불이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는 시구(詩句)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이라는 구절에서는 얼굴이 붉어지는군요. 급격히 생존과 성장을 이루다보니 어쩌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기 보다는 ‘역동적인 밤의 나라’가 됐습니다. 자살, 교통사고, 매춘, 우울증…, 큰 것을 얻는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타고르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이 맞을 겁니다. 그 등불은 이제까지는 불씨를 키워 활활 타오르는 데 치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은은하게 구석구석까지 비치는 그런 빛이 되기를 빕니다. 모두가 ‘동방의 등불’에 대해 긍지를 간직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타고르의 탄생일에, 타고르의 시를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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