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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고 자살면역력이 강할 순 없었다

오용진 2009. 5. 25. 11:31
대통령이라고 자살면역력이 강할 순 없었다
‘바보 대통령’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넌 분이 저렇게 떠나선 안 되는데 안타까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누가 저 분을 저렇게 떠나가게 했나 분노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없습니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것이라는 한 의사의 말이 떠올랐지만, 사람은 자신을 100% 통제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앞의 생각을 잠재우더군요.

특히 우울증이 있으면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의 유서를 보면 영락없는 우울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다만 전형적인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단기간의 스트레스에 따른 ‘반응성 우울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요인이 겹쳤을 겁니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기분파’였지요. 그리고 CEO나 어떤 단체의 리더가 자리에서 물러나서 평범한 자리에 가게 되면 공허해지는 ‘퇴임 후 증후군’을 겪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언론에서 자살 보도가 홍수를 이뤘습니다. 자살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살을 정당화하는 그런 보도가 난무하면 자살에 대한 문턱값이 낮아져 사회 구성원은 자살을 도피기제로 삼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런 배경에서 검찰 수사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반응성 우울증을 유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신의 가족과 지인들이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가져왔겠지요.

어떤 사람은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자살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라고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이 무서운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더 잘 알고 예방에 신경 쓰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언론의 보도도 지나치게 선정적입니다. 사회 전체의 자살에 대한 문턱값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개인적으로 1995년 노 전대통령이 ‘꼬마 민주당’ 후보로 정치1번지 종로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지고나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첫 마디가 ‘마누라가 정치 포기하라고 하겠네요’였습니다. 그때 헤어지고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 모습이 생생히 살아나는군요. 한없이 외로워보이던 그 뒷모습이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