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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꼭 필요할 때 가려서 해야 아름다운데

오용진 2012. 1. 5. 23:54

말은 꼭 필요할 때 가려서 해야 아름다운데

미국의 제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부부가 중서부의 한 농장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영부인 그레이스 쿨리지가 양계장 축사를 지나다 호기심을 못 참고 닭은 하루에 몇 번 교미를 하는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농장주가 “열두 번도 더 한다”고 대답하자 부인은 “대통령에게 그 얘기를 전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듣고 농장주에게 수탉은 매번 같은 암탉과 교미하는지 물었습니다. 농장주가 “매번 다른 암탉과 교미한다”고 대답하자 말했습니다. “내 아내에게 그 사실을 전해주시오
.”

생물학에서는 수컷이 여러 암컷과 교미를 원하고 암컷이 바뀔수록 강한 자극을 얻는 것을 ‘쿨리지 효과’라고 부르지요.

이처럼 쿨리지는 유머가 뛰어나고 웅변과 연설의 달인이었지만 평소 말수가 적어서 ‘조용한 칼’(Silent Cal. 칼은 캘빈의 약칭)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 이 별명은 부통령 시절 집이나 사교모임에서 필요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 붙었다고 합니다.

작가 도로시 파커가 사교모임에서 쿨리지에게 “당신이 세 단어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남자와 내기를 했다”고 말하자, “당신이 졌소(You Lose)”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

쿨리지는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대통령 직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 아직 백악관에 거주하고 있어 호텔에서 머물고 있을 때 좀도둑이 창문을 넘어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쿨리지는 좀도둑이 옷가지에서 시계와 지갑을 훔치려고 하자 조용히 말했습니다. 시계에 새겨진 글을 보라고. 거기에는 ‘쿨리지 하원의장께, 매사추세츠 주의회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도둑은 쿨리지에게 들켜서 한번 놀라고 “당신이 쿨리지 대통령?”이라며 두번째 놀랐습니다.

좀도둑은 친구와 함께 워싱턴에 놀러 온 대학생이었습니다. 호텔비와 기차요금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쿨리지는 32달러를 빌려주고 반드시 갚으라고 말합니다. 나중에 아내와 언론인 프랭크 매카시에게 이 얘기를 전하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 이야기는 쿨리지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난 1983년 8월 ‘스프링필드 데일리뉴스’ 지에 리처드 가비라는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집니다. 기자는 쿨리지 부부와 함께 매카시도 세상을 떠났고 비밀로 묻을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기사를 쓴다며 그 청년이 쿨리지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돈을 갚았다는 뒷얘기도 소개했지요.

1933년 오늘은 ‘침묵의 대통령’ 쿨리지가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말이 말을 낳는 세상,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 천박한 말들이 박수를 받는 세상에 ‘쿨리지의 침묵’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자기가 한 말이 틀릴지도 모르는데도 조심하지 않고, 틀린 말이 밝혀졌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런 사람이 박수를 받는 세상은 건강하지 않는 사회이겠지요? 말을 아끼는 현자가 칭송을 받는 그런 곳이 진정 건강한 사회이겠지요?